사이드 프로젝트 창업의 본질

5,038개의 같은 요청, 그리고 거절
창업 5년 차 어느 화요일 오후, 우리 팀은 사용자 게시판을 정리하고 있었다. 누적된 사용자 요청 중 같은 내용이 5,038건이었다. 모두 한 줄이었다.
“애플워치를 지원해주세요.”
대부분의 회사는 이 요청을 받아들인다. 5,000명이 같은 말을 한다는 건 강력한 시그널이고, 개발 비용도 크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우리 팀은 회의 끝에 거절을 결정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 앱이 추구하는 본질은 “시간을 알려주는 일”이 아니라 “사용자의 행동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애플워치에서 알람을 울리는 기능은 시간 축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행동 축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었다. 받아들이면 제품이 “뭉툭”해지고, 그 뭉툭함이 5년 후 우리를 무너뜨릴 거라고 판단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 거절이 우리 회사를 글로벌 1위로 만든 결정 중 하나였다. 그날 받아들였다면, 우리는 지금 평범한 알림 앱 회사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해 12년 동안 한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1위를 만든 창업가가 정리한, 사이드 프로젝트 창업에 대한 6가지 원칙이다. 투자 없이, 큰 인력 없이도 작동했던 본질적인 룰들이다.

원칙 1. 자기 문제에서 시작하라 — 사이드 프로젝트의 가장 큰 힘
대학생 시절,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매일의 전쟁이었다. 시중의 알람 앱들을 다 써봤지만, 어떤 앱도 나를 제대로 일어나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직접 만들었다. 내 문제를 풀기 위해서였다. 사업 계획서나 시장 분석은 없었다. 그냥 내가 매일 쓸 앱이 필요했다.
이게 사이드 프로젝트 창업의 가장 큰 힘이다. 자기 문제에서 출발한 제품은 PMF(Product-Market Fit)를 자동으로 통과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자기가 매일 쓰는 제품을 만들면 다음 세 가지가 자동으로 작동한다.
| 항목 | 외부 시장 분석 시작 | 자기 문제 시작 |
|---|---|---|
| 첫 사용자 | 영업으로 확보해야 함 | 본인 = 첫 사용자 |
| 피드백 루프 | 사용자 인터뷰 필요 | 매일 본인이 쓰면서 발견 |
| 개선 우선순위 | 가설로 결정 | 본인 불편 = 우선순위 |
| 동기부여 | 외부 평가에 흔들림 | 매일 더 좋아지는 게 보임 |
3년 동안 혼자 만들면서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매일 내가 그 앱을 사용하면서 매일 더 좋아지는 걸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외부 투자도 없었고 팀도 없었지만, 매일의 작은 진보가 다음 날을 버티게 했다.
만약 지금 “어떤 사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상태라면, 시장 분석 보고서를 보지 말고 본인 노트를 펼쳐보라. 최근 6개월 동안 본인이 가장 자주 불평한 일이 무엇인가. 거기에 사이드 프로젝트의 첫 단추가 있다. 당장 100명에게 팔리는 제품일 필요는 없다. 본인이 매일 쓸 만한 것이면 충분하다.

원칙 2. 포화 시장도 본질을 다시 정의하면 새 시장이 된다
알람 앱 시장에 진입한다고 했을 때, 거의 모든 사람이 같은 말을 했다.
“그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야. 다른 분야로 옮기는 게 낫지 않을까?”
기본 시계, 기본 알람, 그리고 수많은 무료 알람 앱들이 이미 시장을 채우고 있었다. 전 세계 30억 명이 이미 어떤 형태로든 알람을 쓰고 있는데, 거기서 새 회사가 뭘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5년이 지나서야 답을 찾았다. 답은 “다른 분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이 분야의 본질을 다시 정의하는 것”이었다.
기존 알람 앱은 모두 같은 축으로 정의되어 있었다.
- 시간 축 — “몇 시에 알려주는가” (모두 비슷함, 차별화 불가능)
우리는 다른 축으로 다시 정의했다.
- 행동 축 — “사용자가 잘 자고 잘 일어나게 만드는 도구”
이 한 번의 재정의가 시장의 풍경을 완전히 바꿨다. 같은 30억 명의 알람 사용자 중에서, “잘 자고 잘 일어나고 싶은” 강한 니즈를 가진 10~20%만 우리 타깃이 되어도 3억~6억 명의 시장이 된다. 시장이 포화 상태인 게 아니라, 시장이 잘못 정의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원리는 거의 모든 산업에 적용된다.
| 시장 | 기존 정의 | 본질 재정의 예시 |
|---|---|---|
| 운동 앱 | 운동 횟수 기록 | 일상 활동 변화 도구 |
| 가계부 | 지출 입력 | 소비 패턴 인식 도구 |
| 메모 앱 | 글 저장 | 사고 정리 도구 |
| 다이어트 앱 | 칼로리 계산 | 식습관 변화 도구 |
포화 시장처럼 보이는 곳일수록, 거의 항상 한 가지 축으로만 정의되어 있다. 그 축을 깨고 다른 축으로 재정의할 수 있는 사람에게 새 시장이 열린다.
지금 진입하려는 시장이 “이미 포화”라고 여러 사람이 말한다면, 그건 그 시장이 한 축으로만 정의되고 있다는 뜻이다. 다른 축으로 본질을 다시 묻는 게, 가장 비싼 발견의 시작이다.

원칙 3. 5,000건 요청도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 뾰족함의 원리
사이드 프로젝트가 자리 잡으면 사용자 요청이 폭발적으로 들어온다. 1만 건, 5만 건, 10만 건. 그 모든 요청을 다 들어주면 어떻게 될까? 제품이 뭉툭해진다.
뭉툭한 제품의 끝은 거의 항상 같다. 사용자 모두에게 어느 정도 만족스럽지만, 누구에게도 “이거 없으면 안 된다”는 제품이 못 된다. 그렇게 5년이 지나면 더 뾰족한 신생 제품에게 자리를 내준다.
뾰족한 제품을 유지하는 건 “추가 결정”이 아니라 “거절 결정”이다. 그리고 거절 결정의 기준은 단 하나다.
“이 요청이 우리 제품의 본질에 부합하는가?”
부합하면 받아들이고, 안 부합하면 5,000건이 와도 거절한다. 이게 뾰족함의 원리다.
거절을 잘 하기 위한 3가지 가이드를 정리하면 이렇다.
| 가이드 | 설명 |
|---|---|
| 본질 한 줄을 적어라 | 우리 제품이 풀려는 핵심 문제를 한 줄로 명확히 적는다 |
| 타깃 한 줄을 적어라 | 누가 우리 제품을 가장 강하게 사랑하는지 한 줄로 적는다 |
| 모든 요청을 두 줄에 비춰봐라 | 본질 + 타깃에 부합하지 않으면, 사용자 수와 무관하게 거절 |
5,038건 요청을 거절한 그날, 우리는 본질(“행동 변화 도구”)과 타깃(“잘 자고 잘 일어나고 싶은 사람”)이라는 두 줄을 다시 확인했다. 애플워치 알람은 그 두 줄에 정확히 부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거절했다.
진짜 사용자 요청에서 진짜 가치 있는 것은 1%도 안 된다. 99%는 “이런 거 있으면 좋겠다” 수준이고, 받아들이면 제품을 망친다. 1%를 가려내는 능력이 곧 제품을 5년·10년 살게 만드는 능력이다.

원칙 4. 매출은 목표가 아니라 지표다 — 게임으로 보기
창업 초기, 나는 매출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일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꼈다. 월 30만 원, 100만 원, 500만 원, 1,000만 원, 2,000만 원. 매번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렸다.
그러다 월 매출 2,000만 원을 달성한 어느 날, 갑자기 깨달았다. 이 패턴이라면 한 달 1조 원을 벌어도, 몇 달 후엔 2조 원을 생각할 거다. 매출 자체가 목표가 되면, 끝없는 갈증만 남고 성취감은 점점 작아진다. 다람쥐 쳇바퀴와 똑같은 구조다.
그날 이후 사업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 사업은 게임이고, 매출은 레벨업 지표일 뿐이다.
| 잘못된 관점 | 새 관점 |
|---|---|
| 매출 = 목표 | 매출 = 지표 (레벨업 표시) |
| 더 큰 매출 = 더 큰 행복 | 더 깊은 문제 = 더 큰 재미 |
| 다람쥐 쳇바퀴 | 던전 깨기 |
| 끝없는 갈증 | 명확한 성취감 |
이 관점 전환이 만든 가장 큰 변화는 의사결정의 기준이었다. 매출이 목표였을 때는 매출을 빠르게 키울 수 있는 결정을 했다. 매출이 지표가 된 뒤에는 “어떤 던전을 깨고 싶은가”가 결정의 기준이 됐다. 매출은 그 던전을 깬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매출을 직접 노릴 때보다 본질적인 던전을 노릴 때 매출이 더 크게 성장했다. 매출은 결과 지표라서, 그 결과를 만드는 본질을 노려야 진짜 큰 매출이 나오는 구조였다.

원칙 5. 부트스트랩의 진짜 힘은 “자유”다
12년 동안 외부 투자를 거의 받지 않고 회사를 운영했다. 처음에는 받을 수 있는 투자가 없어서였고, 나중에는 받지 않는 게 더 유리해서였다. 부트스트랩을 12년 해본 사람으로서 정리하면, 부트스트랩의 진짜 힘은 자금이 아니라 자유다.
| 항목 | 외부 투자 받은 회사 | 부트스트랩 회사 |
|---|---|---|
| 의사결정 자유도 | 투자자 눈치 | 본인이 결정 |
| 5년 후 EXIT 압박 | 강함 | 없음 |
| 매출보다 빠른 성장 압박 | 강함 | 없음 |
| 단기 KPI에 휘둘림 | 자주 | 적음 |
| “거절”의 자유 | 어려움 | 강함 |
5,038건 요청을 거절한 결정도, 매출 목표를 던전 관점으로 바꾼 결정도, 외부 투자자가 있었다면 어려웠을 결정이다. 단기 매출을 포기하면서 본질을 지키는 결정은 부트스트랩이라야 가능하다.
물론 부트스트랩에는 약점도 있다. 자금이 부족해서 좋은 인재 채용이 어렵고, 글로벌 빠른 확장도 못 한다. 그래서 부트스트랩이 작동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사업이 영업이익을 빠르게 내는 구조여야 한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해서 매월 작은 매출이라도 나오는 모델이 부트스트랩에 가장 적합하다. 거대 자본이 필요한 사업은 부트스트랩으로 못 한다.
지금 사이드 프로젝트를 고민 중이라면, 먼저 자문해야 할 질문은 이거다. “이 모델이 처음 12개월 안에 영업이익을 낼 수 있는가?” 답이 “아니오”라면, 사이드 프로젝트가 아니라 투자 받는 스타트업 모델로 가야 한다. 답이 “예”라면, 부트스트랩의 자유를 100% 활용할 수 있다.

원칙 6. 본질까지 파고드는 문화 — Drill Deep
지난 12년 우리 회사가 같은 길을 못 따라하는 후발 주자들을 만든 핵심은 단 하나다. “왜?”라는 질문을 끝까지 한다는 문화.
대부분의 회사는 표면 문제 해결에서 멈춘다. 사용자가 불만을 말하면 그 불만을 푼다. 매출이 떨어지면 마케팅을 늘린다. 직원이 떠나면 채용을 늘린다. 표면 처방의 끝은 거의 항상 같다. 같은 문제가 형태만 바꿔서 다시 돌아온다.
본질까지 파고드는 문화는 다르다. 표면 문제를 보고 멈추지 않고, 그 아래 5단계를 더 묻는다.
- 왜 사용자가 이 불만을 말하는가?
- 우리 제품의 어떤 정의가 이 불만을 만들었는가?
- 그 정의는 우리가 풀려는 진짜 문제에 맞는가?
- 만약 정의가 잘못됐다면, 어떻게 다시 정의할 수 있는가?
- 다시 정의한 후에는 어떤 결정들이 달라져야 하는가?
이 5단계를 끝까지 묻는 회의가 우리 회사의 핵심 회의 형태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이 회의에서 나온 결정은 5년·10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는다.
“알람 앱은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라는 표면 정의에서 멈췄다면 우리도 그저 그런 회사가 됐을 것이다. “왜 알람 앱은 시간 축으로만 정의되어 있는가?”라는 질문 한 번이, 12년의 회사 방향을 바꿨다.
지금 회사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면, 거의 항상 표면 처방에서 멈췄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그 아래 5단계를 묻는 시간을 가져보라. 그 시간이 회사의 5년을 결정한다.

마무리: 사이드 프로젝트의 12년
12년 전 본인 문제를 풀기 위해 시작한 사이드 프로젝트가, 지금은 글로벌 시장에서 1위를 만들고 있다. 투자도 거의 없이, 50명이 채 안 되는 인원으로. 이 12년에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다.
“작게 시작하되 깊게 파고들어라. 깊이가 곧 거리다.”
사이드 프로젝트 창업은 작게 시작한다는 점에서 자주 가벼워 보인다. 그러나 12년이 지나서 살아남는 회사들은 거의 항상 본질에 대한 집착이 깊은 회사들이다. 시장 트렌드를 좇은 회사가 아니라, 한 가지 본질을 5년·10년·15년 동안 파고든 회사가 결국 그 분야의 1위가 된다.
지금 사이드 프로젝트를 고민하고 있다면, 거창한 시장이나 큰 자본을 떠올리지 말고 본인이 매일 마주하는 한 가지 불편에서 시작하라. 그 불편의 본질을 깊게 파고들 수 있다면, 12년이 지나면 그 분야에서 가장 깊이 들어간 사람이 된다. 깊이는 운으로 못 따라잡는 자산이다.
